남쪽


우리 둘 다 추운 것을 싫어해서 '남쪽'이란 소리의 울림에서 따스함을 느꼈을 뿐이지.


- 가네시로 가즈키, '꽃' 중에서




by xiongameon | 2010/09/15 23:17 | 맛동산 | 트랙백 | 덧글(0)

자유인





나는 이제부터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이천십년구월십오일

후리덤 김현준









by xiongameon | 2010/09/15 21:17 | 잡동산 | 트랙백 | 덧글(0)

집갑니다



기다려온 아침이었다. 그 전날 새벽까지 위닝일레븐으로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느라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했지만 가벼운 몸으로 운동장을 찾았다. 오랫만에 인원이 늘어 3:3 미니게임을 할 수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ㄱㅎ의 패스를 받아 한 골을 넣었다. 즐거운 시합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부상.

학창시절에야 운동하며 다치는 일이 흔했지만 참 오랫만이고, 생각보다 심각했다. 왼쪽 발목아래가 심하게 붓고 전체적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덕분에 난생처음 한의원에 드러누워 침도 맞아보고, 재활의학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은 환자들의 마음도 치료하기위해 애쓰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건 이 후로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천천히 생각하고, 더 천천히 행동하는 것. 어쩌면 발이 불편하니 걸음이 느려진 것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다. 달릴 때의 청량감이 좋아서 이따금 출근 길에도 뛰고, 당연히 퇴근 길엔 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앞서 지나가는 상황에도 여유를 부릴 수 밖에 없는 지금은 뭔가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있다. 옆을 보기 시작했다.

나의 길은 직선이었다. 앞을 내다보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그런데 사실 내가 서있는 곳은 직선 도로가 아니라 광장이었다. 나는 갑자기 두 시 방향, 아홉 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거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으며, 이따금 정면으로 맞닥들이거나 가까스로 스치거나 옆에서 함께 걷기도 한다. 왜 몰랐을까. 

혼자 커피숖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면 허세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나. 그러나 요즘 나는 커피숖 구석에 앉아 쇼팽과 박범신, 브로콜리너마저와 가네시로가즈키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것을 자주 느끼고 있다. 왜 몰랐을까.

Equillibrium, 보다 젊었던 시절, 한 번은 앞서 기가막힌 패스를 해준 ㄱㅎ가 영화CD를 한 가방 가지고 와서는 내 방에서 함께 잘 때의 일이다. 나는 열심히 그 영화들을 데스크탑에 옮겨담았고, 그 중 인상깊게 본 영화가 이퀼리브리엄이었다. 갈등, 폭력, 전쟁 등 인간사의 惡은 인간이 가진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라하여, 감정의 싹을 자르기 위해 사랑은 물론 각종 문화와 예술을 통제하는 전제국가를 그리는 영화다. 당시 크리스천베일의 멋진 액션을 몇 번이고 돌려보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 떠올리는 장면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 9번 심포니를 들으며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는 씬이다. 나 스스로 이퀼리브리엄을 유지하기 위해(영화의 제목은 이와는 다른 의도였을테지만) 감정의 통제, 동굴로 숨기를 선택해왔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그것을 막을 수는 없나보다. 이따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북받침이 괴로웠으나, 이제는 그것을 즐겨보기로 한다. 감정의 부침이, 마음껏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이 내가 생명력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집갑니다, 참 무심한 메시지가 나의 습관과 너무나 닮아서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광장에 선 지금은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은 더 따뜻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by xiongameon | 2010/09/09 23:14 | 잡동산 | 트랙백 | 덧글(0)

오랜 친구들

근 십년간 사용해오던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자 새삼 아날로그의 매력에 빠져 가방이 무거워졌다. 책이며, CD플레이어, 잡상노트가 부활했다. 어이~ 반가워~


by xiongameon | 2010/09/07 23:34 | 잡동산 | 트랙백 | 덧글(0)

세 가지 이야기



오후 늦게까지 무거운 구름이 낮게 깔리더니 하필 이 시점에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정말 쏟아지는 비다. 지하철 출구에서 저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칠팔십미터쯤 되려나, 평소같으면 앞뒤안보고 내달렸겠지만, 같은 장소 같은 처지의 한 사람 때문에 고민이다. 그리고 마을버스 정류장 대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렸다. 삼천원짜리 파란 땡땡이 우산을 집어들고 다시 지하철역으로 왔다. "차타는 곳까지 같이 가요."



첫 번째 이야기

J야 너와 정말 많이 닮은 이 아이와 작은 우산을 함께 쓰며 네 생각을 한다. 우리 짧았던 두어 번의 만남 중 한 번은 우리도 이렇게 작은 우산을 함께 쓰고 걸었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 베푸는 호의를 마지막으로 기억으로만 남은 너의 존재를 전부 지워버리려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이제는 더 이상 너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으로 어떤 기대도 설레임도 느끼지 않도록, 그렇게 무던히 널 보내는 것이다. "전 내려서 금방이에요, 우산 그냥 가져가세요." 그 때 네 눈빛은 어쩌면 지난 날, 너를 떠날 때 네가 보낸 마지막 눈빛과 너무나 닮았구나.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아무런 끈도 없이 그렇게 네게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나는 곧장 버스에서 내렸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나눈 가벼운 눈인사, 그게 서로를 향한 전부다.


두 번째 이야기

이 년전 너와 헤어지고, 일 년전 네가 다른 누군가와 다정히 걷는 모습을 우연히 본 후에야 너를 완전히 잊겠노라 다짐했었다마는, 이렇게 널 닮은 사람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걸 보니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어쩌면 내가 일 년전 명동에서 본 사람도 네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너와 똑같지만 네가 아닌 누군가가 바로 그 시간에 거기 있었던 게 아닐까. 너를 단념할 수 있도록 도왔던 그 사건이 거짓이었던 것. 너를 닮은 이 아이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네 생각의 재발과 내 희망의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이제와서 다시 무엇을 한다면 무척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미 난 우산을 집어들고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는가. 우리 같이 가자고.


세 번째 이야기

"이 동네에 사시나 봐요." 외모와 달리 성숙한 목소리다. "네, 어디까지 가세요?" "우성아파트요." "그럼 7번인가요?" "아뇨, 5번이나 101번이요." "아하, 저는 구민회관 근처에요. 전 내려서 금방이에요. 우산 그냥 가져가세요." 고작 그것이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부다. 처음엔 지인인가 싶어 그를 봤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란걸 금방 알아차렸음에도 세련된 외모에 자꾸 눈이 간다. 갑자기 쏟아진 비때문에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매력적이다. 우산을 같이 쓰자면서 말을 걸어볼까. 그러나 그 뿐이다. 연락처를 주고 받자니 호의가 저의로 변질된다. 그건 나도 불쾌하다. 인연이라면 또 어떤 식으로든 다시 만나겠지. 시간과 우연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가벼운 눈인사로 안녕.



- FIN -



by xiongameon | 2010/09/01 22:44 | 잡동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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